섬광기억

생각 2009/05/24 15:53

 
인지심리학에서의 섬광기억(Flashbulb Memory) 현상이란 큰 사회적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개인이 그때 처해있던 개인적 상황이 그 사건에 결부되어 기억 속에 깊게 각인되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적으로는 조승희의 총기난사사건, 숭례문 전소 사건등이 발생하였을 때의 기억이 내겐 아직도 깊이 남아있다.

지금 장안을 들썩이게 하는 이 사건이 내게 그러한 섬광기억을 남길 만큼의 큰 충격으로 다가왔느냐고 하면 솔직히 그건 아니라고 밖에 얘기할 수 없다. 그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저를 버리"시라고 말한 그 순간 그의 (개인적으로는 무척 싫어하는 표현이지만) 정치 생명은 사실상 끝났다. 누구보다도 깨끗하다고 자부하였고, 그리고 다른 그 누구보다 그 자신에게 있어 그 원칙에 충실하고자 했을 그가 "저를 버리"라고 말한 것은 이미 그 자신이 그 자신을 '버리고'난 후였을 것이다. 

이미 그러한 바로 조심스럽게나마 간주하고 있었기에, 그의 비보가 위에서 말한 사례들처럼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 아닌, 무심결에나마 예정되어있던 귀결로 여긴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오히려 잘 만들어진 소설처럼 너무나도 개연적이기에, 별의별 노이즈가 산재하는 현실이라고는 믿기 힘들만큼 잔혹한 귀결이었다.

조금이나마 철이 든 후부터, 내게 있어 그는 별로 매력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공안정국 때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고 하지만 내가 본 그는 오히려 현실주의자에 가까웠다. 이른바 ‘신자유주의 좌파’로서, 그는 과감하게 FTA를 추진하여 GDP를 증진시켰고, 이미 서생원 전에 전경 진압으로 농민을 죽음에 이르게끔 한 적이 있다. 그는 분명 숭고한 이상을 품고 있었겠지만,  자신이 현실을 직시해야한다고 생각하여 이를 과감히 실행에 옮겼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그가 취했던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개인적 인품과 그가 이룩한 정치적 성과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줄곧 비판적 시각에서 바라보았고 이는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물상의 아들로 태어나 의기를 품고 ‘바보’로 살아가며 많은 것을 바꾸어냈지만, 그와 동시에 끝까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던 그에게 나는 재차 깊은 애도를 표한다. 고인에게 무례를 끼치게 될까 두렵지만, 마치 서양비극의 주인공처럼 스러져간 그에게 존경과 한탄과 연민을 마지막으로 보낸다.

 

다만 여전히 속이 수틀린다. 누군가는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 했지만, 진정 부끄러움에 몸부림쳐야할 자들이 버젓이 이 땅 위를 걸어 다니고 있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고인에게 ‘좀 더 꿋꿋이 살지 그랬냐’고 나불거리는 그 주둥이가, ‘깊은 충격을 받은 듯’하다면서 시청 광장 분향소를 전경으로 뒤덮는 작자가,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태연하게 광기를 주도하는 그들이 이 땅에 버젓이 서있다는 사실은 부조리라고 나는 주장한다.

Posted by 가현

 

  • 정보구조, 언어, 의미, 지향성, 자료구조, 범주, 알고리즘 등에 관한 작업(?):

현재로서는 아마도 전공할 것으로 보이는 분야. 어렴풋한 전망은 하고 있지만 과연 어떤 물건이 튀어나올까, 나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일단 지금으로서는, 평생을 걸어볼만한 공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본다.

(필요요소: 분석철학 전반/현상학 일부/신칸트주의 철학등, 언어학-아마도 의미론 위주, 인지심리학, 뇌과학,
컴퓨터공학중 자료 및 데이터베이스 구조등, 어쩌면 일부 사회학)

  • 도시에 관하여:

고등학교 3학년 때 썼던 왕가위 초기 영화들의 도시적 맥락에서의 분석에 관한 졸업논문은 지금 생각해보면 실로 손발이 오그러들지만, 분명 도시와 그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인문학적인 탐구는 내가 정말 오래전부터 흥미를 지니는 부분이다. 어줍잖게나마 벤야민을 읽고, 건축쪽 심포지움을 다닌 것도 그렇고. 사실 위의 주제에 비해서 이는 어디까지나 유보적이지만, 언젠가 내가 죽기 전까지 위의 연구를 밈(Meme)이나 과학철학적 내용으로까지 확장시킬 수 있게 된다면 아마 두 주제가 극적으로 통합될 수 있을 날이 올 수 있을지도 없을지도......

(필요요소: 발터 벤야민, 프랑크푸르트 학파쪽 사회철학, 도시계획쪽 이론들, 'bout 서울, 등)
 

  • 언어:

개별 언어를 공부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나를 설레게 한다. 처음 대학교를 입학할 때의 목표는 대략 12개쯤을 어느 정도 능숙하게 구사하는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과연 얼마나 할 수 있을까?

(필요요소: 한국어, 중어 보통화, 광동어, 민남어, 문언, 일본어, 베트남어, 힌디어, 산스크리트어, 아랍어, 희랍어, 라틴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 

  • 춤:

내가 대학에 와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중 하나. 인생을 몽땅 거는건 아닐지라도, 평생 동안 춤을 추며 살고 싶다.

Posted by 가현

사실 춤이라는 것들 사이에 뭐 그리 큰 차이가 있을까?
무엇보다도 스트릿댄스라는건 도대체 '무용'과 뭐가 다른걸까.
 
 
한국무용쯤 되면 몰라도, 나는 적어도 서양에서 유래한 춤들 간에 뭐 그리 큰 차이가 존재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사실 발레의 기본이 되는 플리에가 뉴스타일 힙합의 기본인 바운스와 형태적으로 다른 점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물론 기본이 아닌 심화 단계에 들어선 이후에는 그 형태가 현격한 차이를 보이게 되지만 그건 스트릿댄스내 하위장르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라베스크와 에어트랙의 차이만큼이나, 크럼프와 하우스의 차이 또한 같은 '스트릿댄스'로 묶기엔 너무나 크다.
 
이렇듯 한 범주로 간주하기엔 너무나도 다양하기 그지없는 스트릿댄스 장르들을 묶어내는 요소는 바로 그 형태에 있어서의 차이가 아닌, 스트릿댄스의 근본적 기치이다.
 
모든 춤들은 음악을 필요로 한다. 혁신적인 현대무용에서는 종종 아무런 음악없이 춤을 추기도 하지만 이 또한 '무음'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음악이 어떠한 대상으로 간주되느냐가 바로 '무용'과 스트릿댄스를 가르는 결정적 요인이다.
 
'무용'에서 요구되는 것은 곡, 그리고 자신의 감정의 표현이다. 곡 전체가 표현하고자 하는 정서를 바탕으로 하여, 그 자신이 표출하고 싶은 감정, 착상, 그리고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일인무가 되었든, 군무가 되었든, 무대에 선 그 순간만큼은 무용수는 또다른 감정을 지닌 그 자신을 한껏 드러낸다.
 
그러나 스트릿댄서에게 주어진 길은, 적어도 선행되어야할 필요조건은 오로지 한가지뿐이다. 그것은 무기질이 되는 것이다. 무기질의 악기가 되어, 자신의 몸으로 흘러나오는 음악을 정확히 '연주'해내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감정의 표현이 아닌, 정확한 박자에의 부합, 멜로디의 표현, 그리고 이른바 '소스'를 터뜨려주는 것이다. 물론 락킹, 크럼프와 같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도록 '의무화'되어있는 하부장르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은 어찌보면 타 스트릿댄스 장르보다도 더욱 비극적이다. 이들에게 허용된 것은 오로지 각 장르에 '들어맞는' 감정, 즉 '코믹'과 '분노' 단지 그 두가지뿐인 것이다. 락커의 무브는 재기발랄할 것이며, 크럼퍼의 무브는 야성적이고 폭발적일 것이다. 이것만이 오로지 '허락되어있을뿐'이다. 그렇게 스트릿댄스는 댄서 자신의 부재를 지향한다.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음악, 댄서 그 자신은 단지 바이올린과 피아노처럼 함께 그 합주를 이루어나가고 있는 악기일뿐인 것이다. 적어도 한 사람의 댄서로서 자리잡기 위해서 거쳐나가야만 하는 과정이다.




술먹고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올렸다가 뭔가 성격이 안맞는듯 해서 블로그로 돌린다.
지금보니 손발이 오그러들어서 뭔가 올리기가 망설여지기도 한다(...)

근 몇 일만에 처음으로 집에 9시경에 들어와서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일단 푹 쉬고 4일 후에 있을 공연을 준비하도록 해야겠다.

Posted by 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