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심리학에서의 섬광기억(Flashbulb Memory) 현상이란 큰 사회적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개인이 그때 처해있던 개인적 상황이 그 사건에 결부되어 기억 속에 깊게 각인되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적으로는 조승희의 총기난사사건, 숭례문 전소 사건등이 발생하였을 때의 기억이 내겐 아직도 깊이 남아있다.
지금 장안을 들썩이게 하는 이 사건이 내게 그러한 섬광기억을 남길 만큼의 큰 충격으로 다가왔느냐고 하면 솔직히 그건 아니라고 밖에 얘기할 수 없다. 그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저를 버리"시라고 말한 그 순간 그의 (개인적으로는 무척 싫어하는 표현이지만) 정치 생명은 사실상 끝났다. 누구보다도 깨끗하다고 자부하였고, 그리고 다른 그 누구보다 그 자신에게 있어 그 원칙에 충실하고자 했을 그가 "저를 버리"라고 말한 것은 이미 그 자신이 그 자신을 '버리고'난 후였을 것이다.
이미 그러한 바로 조심스럽게나마 간주하고 있었기에, 그의 비보가 위에서 말한 사례들처럼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 아닌, 무심결에나마 예정되어있던 귀결로 여긴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오히려 잘 만들어진 소설처럼 너무나도 개연적이기에, 별의별 노이즈가 산재하는 현실이라고는 믿기 힘들만큼 잔혹한 귀결이었다.
조금이나마 철이 든 후부터, 내게 있어 그는 별로 매력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공안정국 때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고 하지만 내가 본 그는 오히려 현실주의자에 가까웠다. 이른바 ‘신자유주의 좌파’로서, 그는 과감하게 FTA를 추진하여 GDP를 증진시켰고, 이미 서생원 전에 전경 진압으로 농민을 죽음에 이르게끔 한 적이 있다. 그는 분명 숭고한 이상을 품고 있었겠지만, 자신이 현실을 직시해야한다고 생각하여 이를 과감히 실행에 옮겼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그가 취했던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개인적 인품과 그가 이룩한 정치적 성과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줄곧 비판적 시각에서 바라보았고 이는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물상의 아들로 태어나 의기를 품고 ‘바보’로 살아가며 많은 것을 바꾸어냈지만, 그와 동시에 끝까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던 그에게 나는 재차 깊은 애도를 표한다. 고인에게 무례를 끼치게 될까 두렵지만, 마치 서양비극의 주인공처럼 스러져간 그에게 존경과 한탄과 연민을 마지막으로 보낸다.
다만 여전히 속이 수틀린다. 누군가는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 했지만, 진정 부끄러움에 몸부림쳐야할 자들이 버젓이 이 땅 위를 걸어 다니고 있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고인에게 ‘좀 더 꿋꿋이 살지 그랬냐’고 나불거리는 그 주둥이가, ‘깊은 충격을 받은 듯’하다면서 시청 광장 분향소를 전경으로 뒤덮는 작자가,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태연하게 광기를 주도하는 그들이 이 땅에 버젓이 서있다는 사실은 부조리라고 나는 주장한다.
